시각장애 학생 및 교사를 위한 교과용도서 대체자료 사업 개선 방안: 모두를위한교과서공동대응그룹의 활동을 중심으로
김헌용 신명중학교 교사/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위원장
I. 들어가며: 현황
2022 개정 교육과정이 2025학년도부터 적용됨에 따라 새로운 교과용도서가 학교 현장에 보급될 예정이다. 이는 시각장애 학생과 교사들에게 이중의 부담을 안긴다. 새로운 교육과정에 적응해야 할 뿐 아니라, 필요한 대체자료를 적기에 받을 수 있을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체 교과용도서 중 시각장애인용은 26.6%에 불과하고, 대체자료 제작에는 최소 2주에서 최대 8주까지 소요되어 학습 공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국민권익위원회).
특히 2022 개정 교육과정부터 중학교 지도서가 교과용도서에서 제외되면서, 시각장애인 교사들의 교육활동 보장이 더욱 취약해졌다. 국립특수교육원이 일반 교재 대체자료 사업을 통해 이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예산과 인력 제약으로 실효성은 미지수다. 문제의 핵심은 대체자료 제작 의무가 법적으로 점자 교과서만을 대상으로 한정되어 있고 관계 법령에 세부적인 사항이 누락되어 있다는 데 있다. 확대교과서나 디지털교과서 등 다른 형태의 자료에 대한 법적 근거가 부족하고 출판사의 의무 사항과 절차가 규정되어 있지 않아 비협조도 해소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시각장애 학생과 교사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본 발제문에서는 모두를위한교과서공동대응그룹의 활동을 중심으로 현행 대체자료 사업의 문제점을 조명하고, 실효성 있는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II. 현행 대체자료 사업의 문제점
현재 국립특수교육원이 주관하는 교과용도서 대체자료 사업은 다음과 같은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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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근거 부재
「점자법」이 점자 교과서 제작만을 의무화하고 있어, 확대·디지털교과서 등 다양한 대체자료 제작은 법적 지원이 취약하다. 특히 교육부 소관의 「초ㆍ중등교육법」과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에 대체자료에 관한 사항이 전혀 규정되어 있지 않다. -
출판사의 비협조
2018년에 제정된 KS 표준(장애인용 교수·학습자료 제작 지침)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대다수 출판사가 비표준 형식(PDF 등) 파일만을 제공한다. 도표와 삽화의 대체텍스트도 누락되는 경우가 많아, 점역·음성 변환 과정이 장기화된다. -
예산·인력 부족
국립특수교육원은 시·도교육청 예산에 의존하지만, 각 교육청의 재정 여건에 따라 지원 규모가 달라 안정적 운영이 어렵다. 제5·6차 특수교육발전 5개년 계획에 포함된 '교과용도서대체자료지원센터' 설립은 8년째 표류하며, 전문 인력 확보와 품질 관리는 여전히 미흡하다. -
시스템 비효율성
에듀에이블 플랫폼은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이 낮고 보조공학기기 호환이 미흡하여, 신청·제작·보급 전 과정에서 시간이 지연된다. 긴급 수요(전학·교사 전보 등)에 대응하기도 어려워, 학습 공백이 발생하기 쉽다.
이러한 제도·운영상 문제로 인해 시각장애 학생과 교사의 교육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특히 2025년 새 교육과정과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시점에 맞춰 개선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교육 격차는 더욱 심화될 우려가 크다.
III. 모두를위한교과서공동대응그룹의 대응 활동
모두를위한교과서공동대응그룹(이하 ‘공동대응그룹’)은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한국시각장애교사회, 한국이료교육학회가 공동으로 결성한 조직이다. 2025학년도 교과용도서 대체자료를 제때 보급하기 위해 2024년 상반기부터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가장 먼저, 교육부와 국립특수교육원에 구체적인 정책 제안서를 제출했다. 단기적으로 2025년 신학기에 시각장애인용 교과서를 100% 적기에 보급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관련 법령 개정과 전담 조직 설립, 국가장애학생교수·학습지원센터 설립 등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한 실무협의체가 지난해 9월에 국립특수교육원 주관으로 구성되어, 교육부·시도교육청 담당자, 장애인 교원·학부모·학생 대표가 함께 개선책을 논의하고 있다.
공동대응그룹은 법령 개정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하여 국회에서 백승아 의원실을 중심으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하도록 지원했다. 또한 현장의 시각장애인 교원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중학교 지도서 제외 등으로 인한 실질적 피해 사례를 공유함으로써 제안 내용의 구체성과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국민권익위원회가 교육부와 한국교육방송공사(EBS)에 시각장애인용 학습교재 제작·보급 체계 개선을 권고하면서, 공동대응그룹이 제기해 온 문제의식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출판사들의 표준형식 준수 의무화와 모든 교과서의 시각장애인용 파일 제작이 권고 사항에 포함된 것은 의미 있는 성과이다. 공동대응그룹은 향후에도 정책 제안, 현장 의견 대변, 법령·제도 개선 추진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시각장애 학생과 교사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IV. 개선을 위한 제언
시각장애 학생과 교사의 교육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개선 방안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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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근거 강화
- 국회에 계류 중인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키고,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KS 표준 준수 및 디지털 파일 납본을 교과서 검정·인정 기준에 포함해야 한다.
- 중학교 지도서 등 교과용도서로 인정되지 않는 자료도 대체자료 제작 대상에 포함되도록 관련 조항을 정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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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예산 확보 및 전문 인력 배치
- 시·도교육청 예산만으로는 사업 안정성이 떨어지는 만큼, 교육부 차원의 국고 지원 체계를 구축한다.
- 국립특수교육원 내 ‘교과용도서대체자료지원센터’를 설립하고, 대체자료 제작·품질 관리를 전담할 인력을 확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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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와의 협력 체계 구축
- 출판사의 KS 표준 준수와 디지털 파일 제공을 의무화하되, 추가 비용 발생 시 적절한 보상 방안을 마련한다.
- 교과서 개발 단계에서 도표·삽화의 대체텍스트를 원저자가 직접 작성하도록 유도하고, 표준화 지침을 공유해 제작 효율성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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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에이블 시스템 전면 개선
- 대체자료 신청부터 제작·보급까지 일원화된 통합 플랫폼으로 개편하고, 시각장애인의 접근성·보조공학기기 호환성을 대폭 강화한다.
- 긴급 수요(전학·교사 전보 등)에도 신속 대응이 가능하도록 전담 인력을 배치하고, 사용자 피드백을 주기적으로 반영한다.
이러한 개선책들은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중요한 과제다. 특히 2025학년도 도입 시점이 임박한 만큼, 교육부와 관계 기관의 적극적인 의지와 시각장애 당사자·전문가·출판사 등이 함께하는 협력이 절실하다.
V. 나가며: 향후 과제
2025년 새 학기까지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등 급격한 교육환경 변화에 발맞춰 시각장애 학생·교사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즉각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발의를 통해 긍정적인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으나, 실제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기까지 넘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다. 특히 대체자료의 적기 제작·보급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지금 당장 수립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교과서 개발 단계에서 접근성을 고려하는 사전적·보편적 학습 설계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모든 학습자가 자신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학습 자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필수 요소다.
모두를위한교과서공동대응그룹은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교육부·국립특수교육원·출판사·교육 현장 모두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모든 학생과 교사가 차별 없이 교육하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 공동의 책임이자 권리임을 강조하며 본 발제문을 마친다.
[부록] 국립특수교육원의 대체교과서 사업 현황
국립특수교육원은 시각장애 학생·교사를 지원하기 위해 교과서를 점자·확대·디지털 형태로 제작·보급하고 있다. 사업 대상은 초·중·고교의 시각장애 특수교육대상 학생(전맹·저시력)과 시각장애 특수교육 교사이며, 청각장애·농·맹농 학생도 일부 지원 범위에 포함된다.
과거에는 주로 대구대학교 점자도서관 등 외부 기관에서 점자 교과서를 일괄 제작했으나, 예산·인력 부족으로 차질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 시·도교육청이 각각 대체교과서를 제작·보급했지만 전문성·재정 여건에서 격차가 커, 2010년대 중반부터 국립특수교육원에 업무가 일원화됐다. 이를 통해 대체교과서 제작·보급 창구가 단일화되어 효율성이 높아졌으나, 재정 안정성과 품질 관리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대체교과서 신청은 매년 10월부터 가능하며, 전학·전보 등의 사유 발생 시 수시 신청도 허용된다. 국립특수교육원은 신청받은 교과서를 점자·큰 활자·점자 파일로 제작·보급하며, 교과서 외에도 다양한 학습 자료를 대체자료 형태로 제공한다. 해외 사례로는 미국의 NIMAC(National Instructional Materials Access Center) 체계가 대표적이다. 출판사의 디지털 원본 파일을 중앙에서 관리하고, 승인된 기관이 이를 점자·촉각·오디오 자료 등으로 제작·배포함으로써 신속하고 표준화된 보급이 가능하다.
이처럼 대체교과서 제작·보급이 원활히 이뤄지려면 법·제도의 정비와 함께 재정 지원, 표준화된 제작·납본 시스템, 지속적 모니터링이 필수적이다. 국립특수교육원도 이러한 국제적 동향을 참고해, 시각장애 학생과 교사에게 더욱 안정적이고 질 높은 지원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