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명]
시각장애인 교과서 접근권 보장의 첫걸음을 환영하며, 실효성 있는 후속 조치를 촉구한다
오늘(2026년 3월 31일), 시각장애인 학생과 교원을 위한 교과용 도서의 적시 제작·보급 의무와 디지털 파일 납본 의무를 명시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의안번호 2217886)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이하 장교조)은 이번 법 개정이 시각장애인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역사적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이를 환영하며, 동시에 법의 실효성을 담보할 후속 조치를 강력히 촉구한다.
헌법소원이 입법을 이끌어냈다
이번 입법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장교조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한시련), 공익법센터 동천과 함께 2025년 7월 TF를 구성하여 시각장애 학생·교원의 대체교과서 미보급 실태를 체계적으로 조사하였고, 같은 해 11월 12일 김시온 외 16명의 청구인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출(2025헌마1551)하였다. 2026년 2월 10일 헌법재판소 제2지정재판부는 이 사건을 전원재판부 심판에 회부하였으며, 이는 대체자료 적시 제공 의무 미이행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헌법재판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번 법안의 씨앗은 2024년 11월, 장교조의 요청을 받아 백승아 의원이 대표발의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었다. 대체자료의 적시 제공 의무화와 디지털 파일 납본 의무화라는 핵심 골격을 처음으로 법안에 담아낸 백승아 의원실의 역할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같은 해 12월에는 국민권익위원회가 교과용도서 제작 시 국가수준 표준 마련과 출판주체의 시각장애인용 파일 제출 의무화를 교육부에 권고하였다(의결 제2024-703호). 나아가 2026년 3월에는 국회입법조사처가 「시각장애인 학생·교원의 교과용 도서 접근권 보장을 위한 입법과제」를 발간하여 정부에 장기 로드맵 수립을 촉구하였다. 이 같은 다방면의 노력이 이번 입법의 토대가 되었다.
장애인의 교과서 접근권이 법률로 보장된 권리가 되었다
이번에 신설된 초·중등교육법 제29조 제4항은 교육부장관 및 교육감에게 장애인 학생과 교원을 위한 교과용 도서가 "점자 등 접근 가능한 방식으로 학기 시작 전 적시에" 제작·보급되도록 할 의무를 부과하였다. 이는 점자법 제12조가 점자 교과서의 제작·보급 의무를 규정하고 있음에도, 적시 보급을 구체적으로 보장하는 규정이 없어 행정 재량에 의존해 온 대체자료 제작·보급 체계에 초·중등교육법 차원의 명시적인 의무를 부여한 최초의 입법이다.
아울러 제5항은 교과용 도서의 발행·제작자에게 디지털 파일을 30일 이내에 제출하도록 하는 납본 의무를 신설하여, 대체자료 제작의 물리적 걸림돌인 원본 파일 확보 문제의 제도적 해소를 도모하였다. 장애인의 교과서 접근권이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법률로 보장된 권리임을 선언한 점에서, 이번 개정의 상징적·실질적 의의는 크다.
그러나 법 조문만으로는 교실에 교과서가 도착하지 않는다
그러나 장교조는 이번 법 개정이 가진 구조적 한계를 분명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디지털 파일 납본 의무가 신설되었으나, 그것만으로 교과서의 적시 보급이 실현되기는 어렵다. 이번 개정안은 출판사가 교과서 원본 파일을 30일 이내에 제출하지 않으면 위법이 되도록 하였다. 그런데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시각장애인 학생·교원의 교과용 도서 접근권 보장을 위한 입법과제」(현안분석 제402호, 2026.3.26.)에 따르면, 현재도 발행자는 이미 10일에서 30일 이내에 파일을 제출하고 있다. 즉, 30일이라는 기한 자체는 현행 관행을 추인하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 진정한 병목은 파일을 받은 뒤 이를 점자로 변환하고, 교정하고, 인쇄하여 보급하는 데 수개월이 걸리는 제작 과정에 있다.
여기에 더해, 납본 예외 사유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정당한 사유"라는 포괄적 위임으로 규정한 점은 우려스럽다. 출판사가 정당한 사유를 넓게 주장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면, 납본 의무 자체가 형해화될 위험이 있다.
둘째, 시각장애 교원을 위한 교사용 교과서와 지도서 문제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현행 법상 "교과용 도서"에는 학생용 교과서뿐 아니라 교사용 지도서도 포함되며, 점자법 제12조 역시 교육부장관에게 시각장애인 교원의 교과용 도서를 점자로 제작·보급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교사용 점자 교과서는 학생용과 별도로 제작되지 않아, 시각장애 교원은 학생 수준에 맞추어 제작된 점자 교과서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중학교 영어의 경우 점자 교과서가 약자를 사용하지 않는 1급 점자로 제작되어, 성인 교사가 읽기에는 분량이 과도하게 늘어나고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교사용 지도서 역시 학생용 교과서 제작의 후순위로 밀려 학기가 시작된 뒤에도 한 권도 도착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사와 학생은 교과용 도서의 제작 방식과 필요 시기가 엄연히 다름에도, 이를 하나의 사업으로 획일화하여 운영하는 현행 체계로는 교원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어렵다.
셋째, 백승아 의원 원안에 있던 "대체자료"라는 용어가 삭제되고 "점자 등 접근 가능한 방식"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되었다. "대체자료"라는 명칭이 교과용 도서의 법적 지위를 단순한 '자료'로 격하시킬 수 있다는 심사 과정의 지적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기존 용어를 삭제하면서 이를 대신할 명확한 개념 정의 없이 "점자 등"이라는 열거적 표현에 머무른 것은 문제다. 대체자료는 점자 외에도 확대교과서, 전자점자(DAISY), 음성교과서 등 다양한 형태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정의 없는 용어의 공백은 향후 대통령령 제정이나 행정 집행 과정에서 정책의 선명성을 약화시키고, 지원 범위를 둘러싼 혼선을 야기할 수 있다.
실효성을 위한 후속 조치를 촉구한다
장교조는 이번 법 개정의 취지가 현장에서 실현되기 위해, 다음의 후속 조치를 정부에 강력히 요구한다.
첫째,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개정을 조속히 추진하라. 현행 대통령령에는 대체자료 제작이나 디지털 파일 납본에 관한 조항이 전무하다. 제29조 제5항과 제6항에서 위임한 디지털 파일의 제출 형식·절차, "정당한 사유"의 범위를 대통령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하되, 납본 예외 사유는 최소한으로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둘째, 검인정 교과서 편찬기준·검정기준에 접근성 요건을 포함하라. 교과서 편찬 단계부터 점역 가능한 구조화된 디지털 파일(XML, EPUB 등) 제출을 의무화하고, 수식·도표·그래프의 대체 텍스트 작성 기준(KS X 1967)을 편찬기준에 반영하라. 파일 제출 이후의 점역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려면, 편찬 단계에서의 접근성 설계가 필수적이다.
셋째, 국정교과서는 대체자료를 병행 제작하도록 의무화하라. 국정교과서는 교육부가 직접 편찬하므로, 원본 제작과 동시에 대체자료를 제작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조건이다. 편찬 위탁 계약에 점역용 디지털 파일 제출 조건을 포함하고, 교과서 편찬 일정에 대체자료 제작 기간을 사전 반영하라.
넷째, 교사용 교과서·지도서의 제작 체계를 학생용과 분리하라. 교사의 전문성에 부합하는 수준의 점자 교과서와 지도서를 학생용과 별도로 제작하고, 학기 시작 전까지 보급이 완료되도록 독립적인 제작 일정과 전담 예산을 확보하라. 아울러 전자 지도서의 화면낭독기 호환성 등 접근성 기준도 함께 수립해야 한다.
헌법소원은 계속되어야 한다
장교조는 이번 법 개정을 환영하면서도, 헌법소원 심리의 지속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법이 개정되었다 하더라도, 수십 년간 누적된 대체자료 미보급의 위헌적 상태가 법 조문 하나로 즉시 해소되지는 않는다. 2025년에도 시각장애 학생용 대체자료 5,437부 중 47.1%가 분권 형태로 보급된 현실, 국민권익위원회 권고조차 기한 내 이행되지 않은 현실은, 법 개정 이후에도 정부의 성실한 이행을 담보할 사법적 감시가 필요함을 말해준다.
장교조는 시각장애인 학생과 교원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교과서에 접근하는 날까지, 입법·사법·행정 모든 영역에서의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법 개정이 진정한 변화의 시작이 되려면, 법의 문자가 아니라 법의 정신이 현장에 도달해야 한다. 우리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할 것이다.
2026년 3월 31일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