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과분하게도 한겨레에서 주는 휴먼테크놀로지 어워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부상으로 상금이 들어왔는데요. 그중 100만 원을 장교조에 기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후원금은 그동안 제가 장교조 활동을 통해 테크놀로지에 대한 전문성을 키울 수 있게 된 점에 대한 감사 표현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집행부 선생님들이 노동조합 본연의 업무를 함에 있어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드리고자 하는 연대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 제11회 휴먼테크놀로지 어워드 시상식에서 시상자와 함께 대상 판넬을 든 김헌용 위원장
이 기회를 빌려 잠시 장교조와 테크놀로지의 연관성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쓰다 보니 길어지긴 했는데 양해 부탁드립니다~ ㅎ
저는 2021년부터 6년 동안 위원장으로 활동했는데요. 그러면서 테크놀로지로 해결한 문제가 크게는 두 가지 정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첫째는 소통과 정보 접근의 어려움이었습니다. 장교조는 처음부터 다양한 감각 장애가 있는 조합원들이 모여 출발한 단체입니다. 따라서 태생적으로 소통과 자료 공유 및 보관 방식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위원장이 되자마자 첫해에 한 일이 그때까지 임원들 컴퓨터와 채팅방마다 흩어져 있던 자료를 Google 드라이브에 모으고 정리한 일이었습니다. 나아가 집행부 선생님들께 Google 드라이브를 웹에서 사용하지 말고 컴퓨터에 데스크톱용으로 설치하여 한글문서가 대부분인 내부 자료들을 이중으로 보관하지 않도록 권장했고, 폴더 및 파일 관리 규칙까지 만들어 주기적으로 데이터를 정리했습니다.
한편 초기부터 사용한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서비스로 문자통역도 있습니다. 문자통역은 청각 조합원들을 위한 편의로 시작했지만 머지않아 장교조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분명해졌습니다. 교육부와의 교섭 때마다 작성된 문자통역 속기록은 회의자료인 동시에 고스란히 장교조의 역사로 남았지요. 이렇게 정리해 온 공동의 자료는 이제 AI 시대를 맞아 귀중한 장교조만의 든든한 데이터베이스로 각종 업무에 재활용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다름 아닌 '일할 사람'을 찾는 것이었는데요. 이제는 고맙게도 지부가 5개로 늘었고, 조합원도 꾸준히 늘고 있지만 반대로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것은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업무 경력이 있는 선생님들은 이미 지부장으로 일하고 계시고, 일반 조합원 유입과는 달리 집행부 인력 유입은 정체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 보니 본부는 물론 지부도 한두 명이 노동조합 운영에 필요한 모든 업무를 맡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가 AI를 노동조합 업무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축적한 자료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최근에는 AI 에이전트 기능을 적극 도입하여 이제는 상당 부분 반복 업무를 자동화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30개가 넘는 스킬과 7개의 에이전트를 만들었는데요. 음성 파일 전사를 통한 회의록 작성부터, 단체 문자 발송, 단체 이메일 배포, 문서24 공문 발송, SNS 홍보, 재정 보고서 작성, 공문·보도자료 작성, Zoom 회의 예약, 구글 폼 작성, 연혁 업데이트 같은 일반적인 노동조합 업무를 포함해, 문자-수어 통역 신청, 법령 조사, 교육청별 인사관리기준 조사, 나이스 웹 접근성 검사 같은 우리 노동조합만의 고유 업무, 그리고 한글 문서 작성·편집과 같은 접근성 관련 작업까지 단순 프롬프트로 모두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수많은 API를 직접 연결하고, 스크립트를 효율화하고 실제 노동조합 업무에 적용하면서 사용성을 검증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 컴퓨터뿐 아니라 공유 드라이브를 사용하는 다른 임원 컴퓨터에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설정하려고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저뿐 아니라 중앙집행위원회의 다른 임원들도 조금씩 제가 만든 스킬들을 사용하면서 업무 편의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제는 누구라도 행사나 이벤트 기획 같은 핵심 업무만 완료하면 보도자료 작성 -> 블로그 게시, 이메일 배포, SNS 게시로 이어지는 부수적 작업들은 바로 프롬프트 몇 번으로 손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노동조합의 업무가 갑자기 두 배씩 빨라지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업무에는 단순한 기계적 컴퓨터 조작 능력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 그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지식과 실행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쪽에서 말하는 소위 '도메인 지식' 말이죠. 하지만 단순 잡무라 하더라도 다양한 장애 유형의 선생님들로 구성된 우리 노동조합 집행부에서는 큰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노동조합이 업무 자동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은 분명히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AI가 집행부 임원을 아예 대체한다거나 모든 일을 자동화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보다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업무 끝단의 반복되는 일들을 줄여주는 것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상당한 자동화를 이룬 우리 노동조합에서도 테크놀로지는 부수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테크놀로지가 지금보다 예측 가능하게 작동하여 집행부가 더욱 본연의 업무, 즉 조합원을 만나고 교육부 및 교육청과 교섭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 그렇게 되기까지는 조금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지만요.
요즘 산업계에서는 주지하다시피 인공지능 중심 업무 재구조화, 일명 AX를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그 와중에 장교조는 트렌드가 아니라 순수하게 집행부의 필요에 의해 상당 수준의 AX를 달성했다고 자부합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애로 인한 업무 마찰을 줄이기 위해서 시작한 전환이었고 따라서 그 효과를 실제로 보고 있습니다.
다소 장황해지긴 했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장교조와 테크놀로지라는 주제로 언제 얘기할까 싶어서 간만에 길게 써 보았네요.
아무튼 앞으로도 장교조에서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업무 경감 방법에 대한 연구와 실험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향후 몇 년 동안 장교조만의 전문성이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 휴먼테크놀로지 어워드 시상식 무대 위 수상자·관계자 단체 기념 촬영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헌용 올림